지금 시대는 ‘돌봄’ 없이 공동체가 존속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오랜 기간 타인으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하고, 성인이라 할지라도 질병과 장애를 겪을 수 있으며 이때 타인의 돌봄없이 살아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와 같은 재난의 상황에서도 돌봄은 멈출 수 없기에 우리는 돌봄을 ‘필수노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돌봄가치는 여전히 평가절하 되어 있으며, 돌봄노동자들의 처우는 열악하기만 합니다.

진보당은 돌봄이 더 이상 주변적인 가치가 아닌 사회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중심적 가치이자 보편적 권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국가’를 만들기 위해 「돌봄노동자기본법」과 「돌봄정책기본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돌봄 사회로의 대 전환’의 길목에서 돌봄 릴레이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두 번째로 ‘돌봄노동자기본법’과 ‘돌봄정책기본법’까지 돌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새로운 법안을 만들고 계신 국민입법센터 신의철 변호사님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국민입법센터 신의철 변호사 ⓒ너머

‘돌봄’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

― ‘돌봄노동자기본법’을 제안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첫 번째는 근로기준법 시즌2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50년이 지나는 동안 사회는 많이 달라졌고, 기존의 근로기준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생겼습니다. 당시에는 ‘돌봄노동’이라는 개념도 없었지만, 현재는 돌봄노동자가 전체 취업자의 15% 수준으로 급증했어요. 업종 특성도 달라서 시대 변화에 법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돌봄’가치가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기존의 진보적 가치로 대표되었던 ‘복지국가’ 담론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말합니다. 복지국가 또한 남성이 부양하고, 여성이 가사를 보는 모델에서 출발했습니다. 즉, 남성이 일을 하면 여성의 돌봄이 이를 뒷받침하는 개념이었죠. 그러나 이미 돌봄은 사회화가 많이 진행되었고, 기존 복지국가의 시스템과 맞지 않은 요소들이 계속해서 드러나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돌봄이 보조적인 것이 아닌, 돌봄자체가 메인이 되는 새로운 국가 비전, 복지국가 이후를 상상해볼 수 있는 테마로써 ‘돌봄가치’의 화두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 법안 마련 과정에 다양한 직종의 돌봄 노동자들과의 간담회도 진행하셨는데요, 이분들이 처해있는 현실과 문제점이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기존의 법들은 왜 이분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었을까요?

돌봄 직종 노동자들과 3~4차례 간담회를 진행하며 문제점을 총 7가지 카테고리로 정리했습니다. 근로자성, 저임금, 고용불안, 근로시간, 휴게 및 휴게공간, 교섭, 산업안전이 그것이며, 대체로 돌봄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들이었습니다.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저임금’ 문제 입니다. 돌봄은 여성이 전담하는 무급, 저숙련, 단순노동으로 간주되며 ‘집에서 애나 보는 것’ 쯤으로 보는 뿌리깊은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돌봄이 사회화 되고, 필수노동이 된 지금 상황에서도 이 인식이 이어지다보니 돌봄노동자 평균임금이 30% 가량 저평가 되고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휴게시간’ 문제입니다. 생산직 노동의 경우 체계적으로 휴식시간을 짤 수 있지만, 돌봄직 노동은 1:1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딱 잘라서 쉴 수가 없습니다. 정부에서 좋은 취지로 장애인 활동지원사들의 휴게시간을 보장시켰더니 현장에서는 온갖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생산직과 돌봄직은 성격자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근로기준법은 이런 식으로 돌봄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단체 교섭 문제도 심각합니다. 국가에서 절대다수 재원이 나오고 세부 지침도 두면서, 정작 돌봄현장은 사적 시장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체계만 복잡하고, 개별 사용자에게 교섭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매우 제약적입니다. 이를테면 노조 상근자 비용(타임오프) 등의 경우도 국가 지원이 없으면 사실상 보장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돌봄직이 국가 재정이 들어가고, 사회화 되었음에도, 생산직과 다르고 저평가 되는 문제 등으로 인해 돌봄노동자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보당은 돌봄노동자기본법 제정을 준비하며 돌봄노동자들의 권리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너머
진보당은 돌봄노동자기본법 제정을 준비하며 돌봄노동자들의 권리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너머

― 법안을 준비하시면서 다양한 외국사례 연구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참고할만한 좋은 사례들이 있다면 몇 가지 소개해주세요.

저임금 개선사례는 뉴질랜드가 눈에 띕니다. 100명 여성, 4명 남성이 일하는 공공부문 요양보호사 사업장에서 노조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문제제기가 참신했는데 ‘만약 성비가 반대였어도 남성들이 이 돈을 받았겠느냐?’는 질문이었죠. 그래서 남성 비율이 더 높은 현장의 임금을 분석하여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노조 측이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뉴질랜드 정부가 판결 취지를 존중하여 15~50% 임금 인상을 실현했던 매우 유의미한 사례였습니다.

근로시간 개선사례는 아일랜드가 있습니다. 그동안 근로시간은 과로 등의 이유로 상한을 제한하는 형태였습니다만, 최근에는 ‘근로시간 하한선 규정’이 핫한 이슈입니다. 쪼개기 계약, 초단시간 근로에 퇴직금 등 혜택이 없는 문제도 있지만 특히 이런 경우 월급 자체가 너무 적은 것이 문제입니다. 아일랜드는 아예 하한선을 정했습니다. 0시간 계약과 같은 초단시간 계약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사용자가 일을 주지 못하면 최저임금 3시간 분은 무조건 줘야 합니다. 주당 평균노동시간도 정해서 보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활이 되니까요. 우리나라도 특히 가정 방문하는 돌봄노동자들은 이용자가 갑자기 취소하면 그날 일거리가 없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노조활동에 대한 불이익으로 일을 안주는 경우마저 있죠.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갑자기 일이 취소되는 경우에도 휴업수당에 준하여 70% 보장 등 최소한의 선을 두는 것을 범안에 담았습니다. 근로시간 하한에 대한 규제는 이제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휴게시간의 경우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밥은 밥이고 휴식은 휴식’의 원칙을 세웠더라구요. 즉, 식사와 휴식시간을 별개로 규정합니다. 휴식의 경우에도 조금이라도 돌봄 노동이 병행되면 근무로 보고, 돌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우만 휴식으로 규정했습니다. 불가피하게 휴게시간을 못가진다면 그 시간에 대해 약 두 배 이상의 임금을 주기로 했죠. 가령, 휴게시간에 30분을 쉬지 못하고 일했다면 1시간 근무로 보고 임금을 주는 식입니다.

노정교섭사례로는 미국의 뉴욕주 사례를 참고했습니다. 주정부가 직고용은 하지 않지만 재정 대부분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비슷한 형태였습니다. 비록 직접적인 사용자는 아니지만 노조가 주정부를 상대로 단체교섭권 가진다고 행정명령에 명시한 결과, 2800명 노동자들이 단체 협약의 적용을 받아 임금이 대폭 인상되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미국 주 차원에서는 꽤 있습니다. 사용자를 그대로 두고도 실질적인 사용자인 국가나 지자체와 교섭할 수 있는 규정을 두는 것입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한 좋은 사례들입니다.

 

― 이번에 야심차게 준비 중이신 ‘돌봄노동자기본법 제정안’의 전체적인 방향과 설계, 주요 내용들을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돌봄노동자 기본법은 총 5개 장과 32개 조항으로 구성됩니다. 1장은 총칙으로 돌봄에 대한 국가책임을 규정하고 돌봄노동 종류들을 정의한 것입니다. 이 대상자들에게는 근로기준법에 우선해서 ‘돌봄노동자기본법’이 적용됩니다. 

2장은 임금 등 노동조건에 대한 규정인데요, 돌봄노동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기간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합니다. 핵심은 ‘임금’인데요, 헌법에 보면 최저임금은 ‘시행’해야 하고, 적정임금은 ‘노력’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국가는 사실상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적정임금의 개념을 가져와서 최저임금의 130% 이상이 되도록 ‘돌봄임금’이라는 개념을 새로이 규정해 보았습니다. 또한 당사자들의 요구가 많았던 경력인정 조항을 넣었고, 그 외 유급 휴가조항, 퇴직급여, 방문돌봄노동자의 최소근로시간 보장, 야간근로 제한, 휴게보장 등도 법안에 포함시켰습니다.

3장은 단체교섭입니다. 노정교섭 절차를 신설하고, 노정협약의 효력을 규정했습니다. 사용자를 넓히기 위해 사용자 단체(가령 요양병원 원장협의회 등) 및 사용자의 공동교섭 의무를 두었습니다. 4장은 업무상 재해인데, 돌봄노동자들 특성에 맞춰 더 필요한 부분을 명시했습니다. 특히 요양보호사들은 근골격계 질환(손목, 관절 등)을 대부분 겪으시는데, 산재 인정은 거의 안됩니다. 그 나이 때는 거의 다 아프다고 생각하는 거죠. 호주 등에서는 이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1년 동안 몇 킬로 이상 대상자를 몇 회 이상 들면 인정한다’와 같이 매우 자세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법에서도 근골격계 질환은 기본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또 전염성 질환, 이용자의 폭언 예방, 작업중지권, 이용자 인권교육 등 간담회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5장은 벌칙규정인데, 특히 지자체 장이 노동자들의 노동법위반 사실을 인지했을 때 노동청에 통보할 의무까지 규정하였습니다.
 

‘공적 재원’에 ‘사적 공급’이라는
모순적인 체계 자체를 전환해야

― ‘돌봄정책기본법’도 별도로 준비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돌봄노동자기본법’으로 포괄할 수 없는 영역들이 있었을까요? 정책기본법에 대한 내용도 전반적으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돌봄정책기본법’의 핵심 취지는 우리사회가 돌봄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봄정책의 근본문제라 할 수 있는 ‘공적인 재원, 사적인 공급’이라는 모순적인 체계 자체를 전환해야 합니다. 아울러 돌봄 원칙을 명시하고, 돌봄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등 ‘돌봄노동자기본법’에 담을 수 없는 총체적인 개념과 권리를 담은 일종의 총론 격으로 정책기본법을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우선 돌봄을 ‘돌봄이 생애주기 전반에서 누구나 직면하는 돌봄욕구에 대한 공적대응’이라고 새로이 규정하면서 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정책 대상도 기존처럼 약자나 부족한 사람이 아닌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정책추진 원칙으로는 선별이 아닌 보편적 지원이고, 돌봄 제공자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탈젠더화 등을 규정하였고, 이를 위한 각 관련자들의 책임과 역할을 명시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공공성 확보를 위한 국가의 책임을 선명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개념으로 ‘돌볼 권리’를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돌봄을 받는 것이나 돌볼 의무에 그치지 않고 ‘나의 가족 등을 내가 돌볼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아이를 맡기고 일하러 나가는 차원을 넘어, ‘내가 돌보고 싶은 것까지도 권리화’ 하는 새로운 개념입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간표도 다시 짜야 됩니다. 통상 9시 출근, 18시 퇴근은 하늘이 내린 진리가 아니라 사실 자본의 요구에 맞춰진 사회적 시간표입니다. 내 아이를 내가 케어하고 싶다면, 더 늦게 출근하고, 더 일찍 퇴근해서 돌볼 시간을 확보하고, 이에 따라 노동시간은 단축되며, 그럼에도 소득은 보전되는 사회. 이런 새로운 상상을 해 보자는 화두를 던지고자 하였습니다.

나아가 무급 가사노동자, 무급 돌봄자와도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최근 무급 가사노동의 1년 경제적 가치가 500조에 육박한다는 보도도 있었잖아요. 우리 사회도 개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당하고 있는 그림자 노동, 하다 안되면 조부모가 황혼의 육아를 해야 하는 이 무급 돌봄자에 대한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체계와 국가적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의 돌봄은 고용창출의 하위 파트정도로 인식되는데, 이를 끌어올려 돌봄 가치를 독자적인 사회정책의 범주로 만들고자하는 법안이 ‘돌봄정책기본법’입니다.

국민입법센터 신의철 변호사 ⓒ너머

무궁무진한 돌봄의 가능성,
진보정치가 돌봄을 더 높은 차원에서 인식해야

― 마지막으로 향후 ‘돌봄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모든 분께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상상력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지금의 노동법도 그 이전시대의 상상력 해방의 결과입니다. 

돌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돌봄은 사회가 사람에 집중하고, 관계에 전제된 특수성으로 인해 현대 자본주의의 소외문제, 개별화 문제를 극복하는 데 있어,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공적 돌봄이 전제된다면 사회 양극화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정치가 제한된 자원의 배분 문제로 접근했다면, 이제는 정치를 국민의 근심을 덜어주는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누구나 돌봄에 대한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에 어르신을 모시는 문제, 아이를 돌보고, 몸 불편한 분을 돌보는 문제, 생애 주기에 따라 언젠가는 반드시 직면하고, 누구나 돌봄의 제공자 혹은 수혜자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국민들의 요구, 근심이 반드시 있습니다. 따라서 진보정당, 진보정치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더 높은 차원에서 돌봄을 인식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민주노동당 시절 무상의료, 무상교육으로 복지정책을 제시했을 때 호응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 시대의 돌봄문제 역시 기존의 복지담론을 뛰어넘는 차세대 담론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시작으로 하여, 진보정치가 사회변화의 진보적 방향을 설정하고, 기성 정치세력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돌봄가치를 중심으로 구상해 보시기를 제안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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