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대는 ‘돌봄’ 없이 공동체가 존속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오랜 기간 타인으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하고, 성인이라 할지라도 질병과 장애를 겪을 수 있으며 이때 타인의 돌봄 없이 살아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와 같은 재난의 상황에서도 돌봄은 멈출 수 없기에 우리는 돌봄을 ‘필수노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돌봄가치는 여전히 평가절하되어 있으며, 돌봄노동자들의 처우는 열악하기만 합니다.

진보당은 돌봄이 더 이상 주변적인 가치가 아닌 사회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중심적 가치이자 보편적 권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국가’를 만들기 위해 「돌봄노동자기본법」과 「돌봄정책기본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돌봄 사회로의 대전환'의 길목에서 돌봄 릴레이 기획 기사를 발행합니다. 네 번째로 소위 ’주부‘라고 불리는 ’무급가사돌봄자‘의 이야기입니다. 현재 진보당에서는 ’주부, 그림자노동 이어 말하기‘ 소책자 편찬 및 온라인 행동을 준비 중인 기획단(이하 기획단)이 서울, 경기, 광주, 제주 당원들의 참여로 운영 중입니다. 이번 기사는 이 기획단 분들의 도움으로 작성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주부(主婦)가 아닌 주부(主部: 주요한 부분)

대체로 주부들은 ‘주부’라는 말을 불편하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래도 집에서 노는 여성, 직업 없이 집안일 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겠지요. 임금노동에 비해 저평가되는 무급가사, 돌봄노동에 대한 세상의 시선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집에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일하러 나갈 거야, 나는 달라!‘라는 절박한 마음도 '주부'라는 단어와 충돌합니다. 이래저래 불편합니다만 현실은 어쩔 수 없습니다. 직업란에 '주부'라고 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랜 세월 가정 내 살림과 육아, 가족 돌봄은 여성의 일이라 여겨졌기에 '주부(主婦)'라는 말은 태생적으로 성별분업적입니다. 따라서 가사와 돌봄을 하는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는 없으며, 굳이 찾자면 최근 신조어로 ‘트로피 남편’(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내를 대신해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는 남편을 일컫는 용어) 혹은 ‘남성 전업주부’ 정도가 있습니다. 참고로 최근 남성 전업주부가 많이 늘었지만 3% 수준이며, 여전히 97%는 여성이 전담하고 있습니다.

야심차게 준비 중인 대한민국 최초 ‘주부’들의 온라인행동과 막바지 편집 작업 중인 ‘주부’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까지 사업을 집행 중인 기획단에서는 고심 끝에 결국 ‘주부’라는 단어를 쓰기로 했습니다. ‘무급가사돌봄자’라는 말보다는 더 직관적이고, 쉬운 용어를 선택했어야 하는 고민이 묻어났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주부(主婦)’가 아닌 ‘주부(主部: 주요한 부분)’ 즉, 세상을 유지하는 주요한 노동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는 뜻으로 사용하자는 겁니다. 이 ‘주부(主部)’라는 말에는 성적 차별도, 비하도 없을 테니까요.

 

분명 '노동'을 하는데, 왜 노동을 전혀 인정받을 수 없을까

책을 쓰기 시작하며 기획단에서는 아주 특별한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19명의 여성들은 모두 42명의 자녀를 낳았고, 돌봐준 가족의 아이까지 총 44명의 아이를 키웠습니다. 이들이 임신한 기간은 모두 421개월, 3개월로만 잡아도 126개월 간 입덧을 했습니다. 그러나 종종 출산까지 밥 냄새조차 맡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구토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겠지요.

신생아가 하루 평균 12회, 12개월까지 하루 5회 수유를 한다고 가정하면 19명의 여성들은 총 97,680회 모유 수유를 하거나 분유를 타고 젖병을 삶았습니다. 뿐만아니라 평균 아이들이 36개월에 대소변을 가리니 대략 339,480개의 1회용 기저귀를 갈거나 천 기저귀를 빨래했습니다. 이유식 먹이는 기간을 평균 10개월로 치자면, 이들은 39,600회 아이와 씨름하며 이유식을 먹여온 것이 됩니다.

게다가 신생아 시절 밤낮없이 쪽잠을 자고, 앉아서 밥을 먹지도 못하고, 혼자 화장실도 가기 어려웠던 상황 등등은 수치로 계산하지도 못합니다. 이쯤 되면 몇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분들이 이토록 쉼없이 했던 일은 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할까요?
통계청에서는 ‘가사노동’이라 규정하지만 왜 주부들은 ‘집에서 노는 사람’ 취급을 받을까요?
왜 주부들은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편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분명 쉬지않고 일했는데 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기간이 ‘경력단절’ 일까요?
분명 쉬지않고 일했는데 4대보험도, 사회적 안전망도 하나도 없을까요?

최근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2019년 한해에만 무려 500조에 육박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GDP의 4분의 1에 달하는 막대한 수준입니다. ‘그림자 노동’이라 불리지만, 이것이 없다면 노동자가 노동을 지속할 수도 없고, 미래의 노동자를 키워낼 수도 없습니다. 즉, 이 사회가 유지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바로 가정 내 재생산 ‘노동’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 무급 돌봄 영역은 거의 백지상태입니다.

주부들이 돌봄국가 건설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대선 앞두고 많은 대권후보들이 돌봄 관련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돌봄에 대한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하나같이 ‘여성에게 전가된 돌봄 불이익’에는 완전히 침묵합니다.

진보당이 제시한 ‘돌봄국가 비전’에는 돌봄을 사회정책의 한 범주로 정하고 일관하게 추진하는 「돌봄정책기본법」, 돌봄노동자 고용과 처우의 합당한 개선을 위한 「돌봄노동자기본법」 등을 비롯하여 ‘남녀평등 및 일‧가정양립, 돌볼권리가 보장된 노동정책’(성별 관계없이 돌보고 가사노동을 하는 주부, 성별임금격차 해소, 노동시간 단축, 돌봄휴가 등), ‘가족 내 무급 돌봄담당자 불이익 해소’(주부국민연금지원, 돌봄수당 등) 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보당은 지금도 각자의 집에서 노동하고 계신 주부들과 손잡고, 주부들이 정치의 주역이 되어 함께 돌봄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9월 15일(수) 오전 11시, 유튜브 진보당 진보TV로 생중계 될 「“우리가 집에서 논다고요?” ‘주부’그림자노동 말하기 대회」에서는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주부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지금 '맘들의랜선행동.com'을 통해서도 많은 주부들의 돌봄과 가사노동 이야기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여기 노동이 있다 – 주부 이어말하기’ 책도 완성되면 전국의 많은 당원들과 함께 읽어보고, 토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진보당 당원들부터 가사 노동을 ‘노동’이라 인식합시다. 그동안 ‘노동’을 ‘사랑’으로 포장하여 여성들에게 떠맡겼던 것은 아닌지, 누군가의 수고로 얻은 편안함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은 아닌지 모두가 함께 되돌아봅시다. 돌봄국가의 비전은 바로 우리에게서 시작한다는 믿음으로, ‘주부(主婦)’가 아닌 ‘주부(主部: 주요한 부분)’로 존중하며, 더 나은 성평등 문화를 당내에서부터 정착해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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