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신부의 생애는 시대의 징표를 찾고 실천하는 구도자의 삶이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부터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 두 차례 투옥, 가톨릭대학교 신학과 교수, 평화신문·평화방송 대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인권의학연구소 이사장 등 큰 줄기만 헤아려도 이렇다.

그의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한 활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작년 광주에서 열린 진보당 정책당대회에 참석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진보당을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던 함세웅 신부를 1월 18일 진보당 당사에서 윤희숙 상임대표가 만났다. 2024년, 또다시 민주주의의 갈림길에 선 이때 가야 할 길을 물었다.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이하 윤희숙) 귀한 걸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살아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신부님을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한 1974년부터 현재까지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계신 신부님의 삶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함세웅 신부(이하 함세웅)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거창하게 설명할 건 없어요. 저는 그냥 그리스도인이고 사제예요.

그간 보수적이었던 가톨릭교회에 농부 출신 교황 요한 23세가 ‘아조르나멘토’를 선포했죠. 매일매일 변화하고 다가가 교회가 쇄신해야 한다는 뜻인데, 우리 사회와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뒤이어 후임 바오로 6세가 선대의 뜻에 따라 교회의 개혁을 완성했고, 가톨릭의 변화 속에서 ‘세상이 곧 교회’라는 적극적인 교회관이 생성되었습니다.

저 역시 세상과 현실, 역사와 우리나라를 보는 눈이 바뀌었죠.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과 교회의 변화가 정의구현사제단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윤희숙 촛불정부가 들어섰으나 촛불혁명이 완수되지 못한 모습과 대비되는 것 같습니다.

함세웅 사실 2016, 17년의 촛불혁명은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기적이죠. 어떻게 그런 기적을 다시 기대할까요. 문재인 정부 당시 모든 정치인이 다 까먹은 것 같아요. 촛불혁명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정말 큰 실망과 좌절,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꺼져가는 촛불을 다시 불살라 일으켜야 한다, 양적이 아닌 질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87년, 2017년의 혁명을 우리 민족사의 기저로 삼고 각자의 자리에서 촛불혁명 갱신식을 해야겠다 싶어요. 다시 촛불혁명을 완성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작년 말 전 정부의 부족함을 뛰어넘어 2024년 4월 총선에서 검찰독재를 뿌리 뽑고, 촛불혁명을 완성하자는 시국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4월 전에라도 검찰독재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게 필요합니다.

윤희숙 저 또한 촛불혁명의 완성이 이번 4월 총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많은 시민들이 촛불혁명 이후 나아가지 못한 현실에 실망과 좌절을 참 많이 했는데,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함세웅 신앙에서의 하느님처럼, 우리 진보당원들에게는 민족이나 정의, 또 함께 잘살자는 평등의 원리 같은 가치가 함축되어 있다고 느껴요. 하느님의 가치를 역사와 현실에서는 진리, 정의, 평등 세상으로 환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그리스도교 신학처럼 ‘우리 민족과 고통받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걸 실천하는 사람들이 진보당 당원들이라고 저는 느꼈어요.

진보당의 청년들을 보며 여기에 한민족의 희망이 있구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확인했어요. 불의에 대항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껴안는 모습들을 보며 이들이 촛불혁명을 완성할 원동력이구나 싶어요.

윤희숙 제가 청년대표 시절 처음 신부님을 만나 뵈었을 때도 청년들을 무척 아끼신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함세웅 항일 독립투쟁에서 3.1 독립선언의 원동력은 당시 청년학생들이었습니다. 광주 학생항일운동도 같죠. 청년들이 살아날 때 그 민족이 살아납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에 맞서 싸웠던 그 청년학생들의 열정이 바로 우리 민족의 힘입니다. 저희 사제들이 박정희와 맞서 싸우게 된 배경도 구속된 청년학생들이었어요. 그분들이 우리를 성당에서 세상으로 초대해서 이끌어냈어요. 제가 늘 청년학생이 우리 시대의 길잡이라고 말씀을 드리는데, 그러한 생동감을 진보당의 청년들 안에서 늘 확인합니다.

윤희숙 많은 국민들이 또다시 윤석열 정권이 세워진 것에 실망하고 낙담하는 것 같습니다.

함세웅 새벽에 대선 결과를 보고 가슴이 아팠죠. 그렇지만 어떡해요? 눈 감고 묵상하고 기도를 했어요. 이 절망, 이 절벽, 이 좌절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앙인으로서 예수님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불의한 정권을 뿌리 뽑는 것, 여기서 우리가 다시 뜻을 펼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도한 정권이 탄생한 것은 사실 우리의 탓이잖아요. 우리 시대를 사는 우리의 탓이고, 문재인 정권의 탓인 거예요. 가슴 아프게 뉘우쳐야 하는데 전 정권의 이들 누구도 회개한 사람들이 없어요. 강제로 뉘우치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넘어서고 뉘우쳐서 부끄럽게 만들고, 검찰정권을 넘어서야 합니다.

진보당은 이번 선거를 잘 치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50년을 내다봤으면 좋겠어요. 국민 속에 뿌리내리고 젊은 세대가 정치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하고, 진보당의 힘은 거기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윤희숙 대표님과 진보당원이 민족의 미래를 건설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살 수 있어요.

윤희숙 맞습니다. 요즘 너도나도 제3지대를 말하는데, 진보당은 제3지대가 아니라 집권을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도 진보집권의 토대를 만드는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4.19도, 6월 항쟁도, 촛불도 왜 그다음 선거에서 항쟁의 성과가 이어지지 못하는가에 대한 진보당의 평가와 성찰이 있었습니다. 항쟁의 주역과 정치권력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촛불정부라 자임했지만 광장을 열어내는 데 있어서 민주당은 한 일이 없거든요. 그러니 변화의 동력이 없었고, 촛불의 과제를 실행하는 데 작은 어려움만 있어도 극복하지 못한 거죠.

촛불의 최대 성과는 ‘촛불세대’입니다. 사회변화의 동력을 꾸준히 키워가는 것이 진보당의 주된 과제이자 방향인데, 윤석열 정권이라고 하는 무도한 검찰독재 정권 앞에 진보당의 성장만이 아니라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고 거부권 통치를 종식하기 위한 야권총단결, 그리고 이를 견인하기 위한 진보정치의 결집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이번 총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함세웅 진보당의 구체적인 목표, 지향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우리 역사에서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것이 원죄라고 생각해요. 친일의 뿌리를 정리하지 않고 꽃을 심고 있는 거죠. 풍토가 마련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민주당이 좋은 보수당이 되고 진보당이 자리를 잡기를 기원합니다. 이번 총선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부터, 독재를 청산하는 것부터 힘을 합쳐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가치에 대한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해요.

윤희숙 진보당은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독재를 심판하고 진보적 국회를 만들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적 국회라 하면 민주세력과 진보세력이 국민을 위해서 경쟁하는 국회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수구세력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신부님의 지향과 진보당의 지향이 같습니다.

함세웅 옳은 말입니다. 진보당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한국 사회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데 진보당이 나섰으면 합니다. 기대가 큽니다.

윤희숙 고맙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처럼 우리 한국 사회에서 진보당의 역할이 무엇일지 더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겠습니다.


대담을 마치고 함세웅 신부는 고(故) 문익환 목사의 30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민주주의가 꽃피고 평등, 평화의 세상을 꿈꾸며 여전히 청년의 열정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뒷모습에 숙연함을 느끼며,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원로 선생님들이 진보당에 거는 기대에 한 걸음 더 내디뎌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긴 시간 내주신 두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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