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 문제는 내 정치인생의 훈장
단결을 외치나 진보정치는 그렇지 못한 현실
진보집권으로 가려면 이래서는 안 된다

2016년 총선에서 61.49%를 득표하며 울산 북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던 윤종오 전 의원.

사법당국의 표적수사와 무리한 기소로 의원직을 상실한 지 5년 만에 피선거권을 되찾아 지난 2월 8일 진보당에 신입당원으로 입당했다. 입당하자마자 한달음에 전주로 달려가 합숙하며 진보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입당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분열된 진보정당의 통합을 이끌어내겠다’고 정치적 포부를 밝힌 윤종오 전 의원을 울산시당 당사에서 만났다.


—다시 현대차 현장에서 일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현장에서는 지원반이라고 해서 다른 노동자들의 일이 비면 그 자리를 채우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조립도 하고 운전도 하고 이 일 저 일 다 하고 있습니다. 현장 복귀해서 이제 2년 됐는데, 노조 교육위원을 하면서 조합원 교육도 많이 했어요.

벌써 올해가 정년인데 노동조합의 정년 관련 요구안이 반영되느냐에 따라 1년 더 다닐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취업 제한 때문에 복직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공직자윤리법 때문에 복직을 제한당했어요. 원래 금감원에서 일하던 사람이 증권사에 취업하면 업무관련성 때문에 취업이 제한되거든요. 당연한 조치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공직을 하기 전에 노동자였고 다시 노동자로 돌아가 ‘복직’하는 것인데 그걸 취업 개념으로 보더라고요. 조립공인 제가 사측에 어떤 압력을 넣을 수 있겠습니까.

 

—의원직 상실 후에 코스트코 문제로 아파트랑 선산에 경매도 붙고 정말 괴로운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2010년도에 구청장 취임하자마자 코스트코 건축허가 신청이 들어왔는데, 그 당시가 대형마트의 상권 죽이기 문제가 굉장히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때예요. 게다가 당시 전국적으로 평균 인구 15만 명당 1개의 대형마트가 있었는데, 울산 북구는 코스트코까지 들어오면 인구 3.6만 명당 1개가 될 정도로 과밀 포화 상태였습니다. 구청장이라는 위치가 그냥 행정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시민의 삶을 지키는 자리니까. 그에 맞게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도 그런 결정을 하시겠어요.

코스트코 문제는 제 정치인생의 훈장과 같은 것이에요. 10여 년 동안 어렵고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당시 코스트코 문제가 사회적으로도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입점거리제한, 의무휴업 제도 도입으로 이어졌으니까요.

 

—오랜만에 현장 복귀한 소감이 어떠세요

이번 두 번째 복귀에요. 2014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하고 복귀했거든요. 그때는 정말 마음이 힘들고 죄송하더라고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선거인데 우리가 단결하지 못해서 내주게 된 거니까. 식당에 밥 먹으러 가서 조합원들 부딪히는 것조차 심적으로 부담되고 그랬어요. 그렇게 한번 겪어서 그런지 이번엔 그래도 좀 괜찮았어요.

—피선거권이 회복되자마자 입당하셨어요. 입당은 자연스러운 결정이셨나요.

당연합니다.

 

—입당하시자마자 전주에 다녀오셨어요

사람이 도움을 받았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 하잖아요. 제가 여러 번 선거를 치르면서 다른 지역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20대 총선 때도 전국에서 만사를 제쳐놓고 와서 목 놓아 외쳐주셨는데요.

빚 갚는다는 마음으로 간 건데 한 표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너무 좋죠. 이번 재선거는 강성희 후보 개인의 당선이 아니라 진보정치가 일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선거이기 때문에 모두 힘을 보태야 합니다.

전주에 있는 현대차 공장에 울산에서 함께 노동운동하던 역전의 용사들이 있습니다. 그분들과 인사드리고 그랬어요.

—노동운동은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일찍이 98년도부터 지방선거에 나선 계기도 궁금합니다.

86년도에 현대차에 입사했는데 그때는 정말 노동강도가 대단했어요. 오른손이 일할 때 왼손이 쉬지 않게 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1분에 차 한 대가 컨베이어벨트에 지나가면 그걸 59초, 58초로 계속 줄이는 거죠.

그러다가 87년에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을 때 저도 모르게 메가폰을 잡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노동운동에 첫발을 내딛게 됐어요. 임원만 못하고 조합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해보면서 96, 97년 노개투 때 조직쟁의실장이랑 현총련 조직국장을 겸하면서 정치파업을 성공적으로 해냈거든요. 그리곤, 현장에 돌아왔다가 다시 노동자정치세력화 선발대로 지방선거에 나서게 됐죠. 노개투 총파업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서 앞으로는 ‘대리정치를 할 게 아니라 직접 나서야 한다’ 이런 자각이 높아졌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실 좀 얼떨결에 나서게 된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처음 구의원 당선되고 구청장까지 연달아 네 번을 당선되셨더라고요.

의정활동을 하다 보면 가끔 저한테 ‘그렇게 힘든 일을 왜 하시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이거 너무너무 재미있어요’라고 답을 합니다. 막 희열이 느껴진다니까요. 어떤 정책을 펼치고 그게 실제로 입안이 되어서 주민들이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큰 보람과 희열을 느낍니다.

구의원 할 때 동네에 민원이 발생하면 ‘윤종오한테 이야기하면 가장 빠른 시간에 해결이 된다’는 게 입소문이 퍼지고 나니까 계속 민원이 들어오고 저도 100% 피드백을 하려고 노력했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모든 사안이 저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요. 그게 쌓이면서 민심을 얻었던 것 같아요.

 

—사실 울산 북구라고 하면 현대차의 조직된 노동을 떠올리는데 오히려 주민사업을 중심으로 말씀하시네요.

물론 두 가지가 같이 가야죠. 주민들의 지지도 중요하고요. 그런데 그 출발점은 노동조합 내부의 단결과 노동자들의 정치의식 속에 있습니다. 노동조합 내에서 조직갈등이 없고 싹 봉합이 돼서 하나로 딱 엮이면 그 힘이 지역으로 쭉 뻗어나가는 거에요.

 

—그런 입장에서 보자면 진보정치 단결에 더 의지가 높아질 수밖에 없겠네요.

제가 계속 진보정당의 단결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다른 게 아니에요. 현실 정치에서 진보당, 정의당, 노동당이 뭐가 다른지 구분할 수 있는 시민들 정말 많지 않거든요. 그런 현실을 현장에서 겪으니까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하게 되죠.

 

—한 발짝 떨어져서 진보당을 보며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진짜 당원들의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헌신적이고 감동적이고. 이루 말할 수 없죠. 다만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이 조금은 주민들과 괴리되는 부분들도 있지 않나. 그래서 좀 더 주민들과 호흡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탄핵과 촛불 국면에서 참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진보정치가 잡지 못해서 다시 국민의힘이 부활하고 이런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현장에 가면 다들 단결 투쟁 외치고 뭉치자고 하지만 정작 진보정치는 작은 차이로 못 뭉치고 있는데, 진보집권으로 가려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당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튀르키예 지진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느끼는 게, 결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문제나 평화를 지키는 문제가 다 국민의 삶을 지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핵에너지 정책도 문제고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는데 어떻게 사과하는 사람도 단 한 명이 없어요.

이런 정권과 제대로 싸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 진보당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서 당원 동지들과 정말 열심히 달려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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