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동안, G7 국가 중 4개국이 중국방문
불과 3개월 사이, 유럽 국가들이 연이어 중국을 찾았다. 12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을 시작으로, 영국, 캐나다, 핀란드에 이어 24~26일 독일 총리까지 베이징을 방문했다. 특히 독일은 EU 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역내 최대 경제국이자, 미국, 중국에 이은 3위의 경제대국이다. 이들의 행보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독일 메르츠 총리는 중국 방문 직전,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최대 규모의 중도 우파 정당) 행사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이 목표”라고 선언했다. 이어 폭스바겐과 BMW 등 주요 자동차 업체를 포함해 30개 기업 대표단을 이끌고 방중 길에 올랐다. 그는 베이징 공항에 도착 직후 “중국은 강대국 반열에 올랐다”며 중국없이 세계적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연설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격히 쇠락하는 유럽경제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누적된 경제 충격이 자리 잡고 있다. EU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약 40%, 독일은 52%에 달했다. 전쟁 이후 러시아 가스공급은 차단되었고, 유럽의 가스 가격은 한때 10배 가까이 급등했다.
이는 단순히 난방 문제가 아니었다. 산업용 전력 가격은 미국 대비 4배 수준까지 치솟았고,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유지돼 온 독일 제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자동차, 유리, 비료 공장 등이 줄줄이 멈춰 섰다. 결국 일부 기업은 유럽 내 투자를 포기하고 중국 등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산업공동화 현상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의 발작이 미국의 동맹을 중국으로 떠밀고 있다"
영국 가디언 기사 제목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에 동참하던 미국의 오랜 우방이자 NATO 회원국들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유럽 윽박지르기, 동맹국을 겨냥한 관세협박, NATO 무용론, 그린란드 매입 시도와 같은 소유 갈등이 가장 강력한 동맹을 흔들었다. 현재 유럽연합은 미국과의 통상무역합의 비준을 보류한 상태다.
유럽 국가들의 이번 중국 방문을 두고 ‘미국으로부터 이탈’로 규정하기에는 이르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희토류와 배터리 등 공급망을 안정시키기 위한 경제적 선택에 가깝다. 그러나 미국 중심의 질서와 패권이 가장 강력한 우군이었던 유럽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임은 분명하다.
유럽국가들, “국제질서 파괴자는 트럼프”
2월 13~15일, 전 세계 60여 개국의 정상들이 모인 뮌헨안보회의(MSC)가 독일에서 열렸다. 미국과 유럽의 안보협력을 상징해 온 자리에서, 미국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뮌헨안보회의 보고서는 ”기존 질서의 전면적인 파괴를 선호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며, 미국을 ‘철거 전문가(Demolition Men)’로 명시했다.
미국 스스로가 전후 질서를 해체하고 있으며, 유럽이 혜택을 누리던 시대는 끝났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유럽은 이제 자신들이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종속 파트너’ 유럽이 만든 균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여타 동맹과는 차원이 달랐다. 유럽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공동 설계·유지하는 핵심 파트너였다. 전후 유럽은 패권의 지위를 포기하고 미국의 패권유지에 기여하는 ‘종속적 파트너’를 자임했다.
유럽은 NATO를 통해 중동·아프리카·동유럽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인정하고, 미국 국채를 대규모 보유하며 금융질서를 지탱하는 일등공신이었다. 이들은 자유무역 체제를 함께 확장하며, 저개발 국가들을 함께 공격했고, 글로벌 시장경제의 특혜를 미국과 함께 누렸다. 미국이 적대국을 양산하며 무력공격을 할 때마다 군사적으로는 ‘작전기지’가 되고, 인권·민주주의 이름으로 미국의 불법행위를 옹호하며 유엔안보리에서 ‘거수기’ 역할을 해왔다.
동맹국 유럽의 가련한 처지가 안타깝다
어쩌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유럽일지도 모른다. 코로나이후부터 무너진 경제침체는 러시아 가스 단절로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정부는 수천억 유로를 보조금으로 쏟아부었지만, 유럽의 경제성장률은 1%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무기지원으로 군사비만 급증했을 뿐 ‘유럽위기론’은 심화되었다. 그리고 트럼프 이후 유럽 동맹국의 처지는 더 악화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80년 동안 미국 질서의 공동 설계자이자 종속파트너가 유럽이었다면,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떠받드는 핵심 국가였다. 지리적 위치는 다르지만, 미국 중심의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지금, 우리 또한 유럽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유럽의 고뇌 섞인 ‘중국행’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다자주의를 확대하는 주요 국가들의 행동과 결단만이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미국의 몰락을 촉진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