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된 혐오 표현!

언제부터인가 혐오는 우리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왔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혐오와 같은 오래된 혐오뿐만 아니라, 신종 혐오도 확산 중이다. 과거 집회에서 반복되던 ‘종북’, ‘빨갱이’라는 혐오는 이제 ‘중국인’이라는 말과 결합해 새로운 혐오로 등장했다. 중국인 유학생은 간첩이라는 주장, 중국인들을 동원해서 부정선거를 치뤘다는 주장, 화교는 특혜로 의대에 진학한다는 식의 가짜 정보가 아무런 검증 없이 유통되며, 혐오는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대상만 확대된 것이 아니다. 혐오의 공간도 확대되고 있다. 온라인 공간, 거리의 현수막, 집회·시위의 현장, 공공 공간 한복판, 곳곳에서 우리는 혐오를 접하고 있다.
 

혐오는 불평등을 먹고 자란다

혐오는 단순히 개인의 성향,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혐오는 내국인과 외국인, 여성과 남성,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구분짓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특정 집단을 편견과 배제, 차별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는 다양한 매체와 공간을 통해 반복되고, 순환하며 확대·재생산되는 사회현상이다. 혐오는 특정 집단을 향해 나타나지만, 그 결과는 사회 전체의 갈등과 분열로, 때로는 특정 집단을 향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개인의 성향과 감정으로 취급하며, 사회가 방치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혐오가 왜 이렇게 확산되고 있는가. 그 뿌리에는 불평등이 자리잡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사회양극화와 불평등이 심각해지면서 커진 박탈감과 분노는 사회구조가 아니라, 좀 더 쉬운 대상인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 특정집단으로 향하게 되었다. 오늘날 그것이 여성혐오 범죄로,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로,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혐오의 정치화를 막아야!

카롤린 엠케는 『혐오사회』에서 “혐오와 증오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고 훈련되고 양성된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러한 혐오의 훈련과 양성에 ‘정치’가 그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2.3 내란 이후 혐오표현 현수막이 급증했다. 문제는 정당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거나 실체가 불분명한 이른바 ‘가짜정당·유사정당’들이 혐오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대량으로 게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솔 의원실에서 진행한 ‘혐오·차별표현 규제방안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며, ‘중국인 범죄’, ‘부정선거’와 같은 출처 불명의 주장과 음모론을 반복적으로 다루는 3개의 정당들은 정당이라고 보기 어려운 시설에 정당사무소를 설치하고 있다. 내일로미래로의 정당사무소는 10곳 중 2곳은 영업시설, 5곳은 사무실로 보기 어려운 주거시설로 등록되어 있고, 자유통일당은 17곳 중 13곳이 교회며, 자유와 혁신은 8개 중 3곳이 영업시설, 1곳이 교회라고 한다.

특정 정치세력들이 ‘정당의 외피’를 활용해 혐오를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현행 법과 제도의 공백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혐오를 정치적 자원으로 삼고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혐오가 정치화되면 사회자원의 동원성과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혐오에 정당성을 더욱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혐오의 정치화를 막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혐오표현 현수막과 집회·시위부터 규제를!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진보당은 손솔 의원은 정당 현수막과 집회·시위 과정에서 나타나는 혐오 표현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을 준비하고 있다. 정당 현수막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화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되 차별과 혐오 선동은 보호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혐오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나서서 규제해야 한다.

혐오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극우·우익 포퓰리즘이 주류 정치로 진입하는 시대가 되었다. 불평등의 씨앗을 먹고 자란 혐오가 대한민국을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갈지 모른다. 그러하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법·제도 도입으로 혐오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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