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의 최상위 지침서인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미국이 최우선 지역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선정했다는 점, 중국과 공존 노선을 채택했다는 점, 그리고 북한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1.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 트럼프는 무슨 생각일까
“미국이 전 세계를 떠받치는 시대는 끝났다” 선언
보고서는 미국이 더 이상 전 세계 질서를 관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냉전 이후 미국 엘리트들은 세계 지배를 국익으로 “착각”했고, 미국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고 지적한다. 또 세계화와 자유무역은 미국의 중산층과 산업기반을 “잠식”했으며, 동맹국은 방위비를“전가”했고, 미국을 무관한 분쟁에 “끌어들였다”라고 왜곡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모든 일에 개입하는 대신,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움직이겠다고 선언하며, 미국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서반구 우선, “미국 우위 확보하겠다”
미국이 최우선 지역으로 지목한 곳은 서반구다. 북미·중미·남미·카리브해를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미국의 영향권 아래 두겠다는 구상이다. 불법 이민과 마약 등 국경통제, 생산기지 근거리 이전, 핵심 광물 자원 확보를 위해 서반구를 미국의 핵심 요충지로 규정했다.
동시에 중국이 “서반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은 남미 최대 교역국으로, 일대일로를 통해 페루의 초대형 항만, 콜롬비아의 지하철, 아르헨티나의 화물철도, 브라질과 칠레의 전력망 등 핵심 인프라 투자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미국은 남미 재장악을 위해 미군 증원, 해상교통로 통제는 물론 정권교체 개입까지 시사했다. 또 미국대사관·국무부를 비롯해 중소기업청과 수출입은행 등 민관을 총동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의 해상을 봉쇄하고,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강화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대만개입, “미국 혼자 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
아시아 정책의 핵심은 ‘미국 대신 동맹국이 전면에 나서라’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이자 잠재적 파트너로 분류했다. 중국을 ‘유일한 경쟁자’로 규정했던 바이든의 중국 봉쇄전략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중국 봉쇄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대만을 중심으로 제1도련선은(오키나와~대만~필리핀~말라카해협)을 여전히 핵심 저지선으로 규정하고, 이곳에 모든 군사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단, 미국은 이를 “혼자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동맹국이 스스로 지역 방위를 책임져야 함은 물론, 제 1도련선 저지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나서서 국방비를 증액하고, 군사력을 집중하며, 미군의 시설 접근권 확대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결국 미국은 중국과 관계 개선으로 이익을 챙기고, 동맹국은 대결의 최전선으로 밀어 넣겠다는 계산이다. 한미동맹 현대화는 중국 봉쇄를 위한 도구이고, 동맹은 수탈의 수단임이 명확해진 셈이다.
유럽·중동·아프리카, 비용은 축소하고 영향력은 유지
유럽 정책의 핵심은 나토(NATO) 확장을 억제하고 러시아와 전략적 안정 구축이다. EU의 민주주의 및 이민 정책으로 서구 문명이 약화됐다고 주장하며, 이를 교정하기 위해 유럽 내 극우 정당의 육성을 시사했다.
에너지 수출국이 된 미국에 중동의 전략적 가치는 하락했다고 판단했다. 과거와 같은 정권교체 방식은 지양하되, 중동의 에너지가 중국·러시아 수중에 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원조 대신 천연자원, 핵심 광물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로 경제 이익을 챙기겠다는 구상이다.
패권 포기가 아닌 우선순위 재배치,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이번 문서를 두고 미국의 유일 패권국 지위를 내려놓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이는 패권의 포기 선언이 아니라, 패권 유지를 위한 재배치 전략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기존의 세계 관리 전략을 접고, 아메리카 대륙부터 확실히 장악해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패권을 유지하는 방식도 변하지 않았다. 군사력을 앞세운 영향력 확대, 남미의 친미정권 창출, 유럽 내 극우세력 성장 등 내정간섭과 정치 공작을 노골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전형적인 제국주의의 전략이다. 바이든 시기의 ‘민주주의’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 ‘극우 포퓰리즘’이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2. 4월 미중 정상회담, 한반도에 훈풍 불까
“김정은 만나러 다시 오겠다” 4월 북미대화 기회 될까
지난 10월 경주에서 열린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이후 ‘미·중 대타협’ 기류가 형성됐다. 관세갈등이 봉합된 가운데, 2026년 4월 트럼프가 베이징을 국빈방문하고, 시진핑이 미국에 답방하는 일정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트럼프는 이 시기 김정은과의 만남이 불발된 것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너무 바빠서 김정은과 만나지 못했다”, “김정은을 만나러 다시 오겠다”는 말도 남겼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서 빠진 ‘북한’
그래서일까. 트럼프 행정부의 NSS 보고서에 ‘북한’이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트럼프 1기 NSS에서 북한이 17번이나 등장한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는 무관심이라기보다 북한의 핵 보유 현실을 부정하지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도 못하는 미국의 곤혹스러운 처지가 반영된 의도적 삭제에 가깝다.
북한은 ‘선 비핵화’는 핵 포기를 강요하는 적대정책으로 간주한다. 트럼프가 북한을 여러 차례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부르며, ‘사실상 핵을 가진 국가’로 인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가 이번 보고서에 ‘북한 비핵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북미대화의 최소한의 여지를 남겨두려는 판단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 북미대화의 조건이 구체적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다.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통일부, 정책 결단이 우선
통일부는 내년 4월을 “놓칠 수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강조하지만, 관건은 한미 당국의 정책적 결단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적대적 대북정책이 남북 관계를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넣은 만큼, 기존 정책을 전면 전환하지 않고서는 긴장 완화도, 관계 개선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 안팎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을 통제하려 움직임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변화를 통제하는 미 현지 관료들
브런슨 주한미사령관은 대선 시기부터 차기 정부가 한미일 군사동맹을 수용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또 한국을 ‘중국 앞 항공모함’으로 비유했고, 한반도 지도를 뒤집어 교육하며 한반도를 대만 문제 개입의 최적지로 규정했다.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해서는 ‘조건 충족’을 앞세우며 사실상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내 전작권 전환’에 제동을 걸었다.
유엔사 사령관이기도 한 그는 DMZ 출입승인 권한을 한국 정부에 부여하는 국회 법안에 반대하며, 유엔사의 배타적 통제권과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행보를 하고 있다.
케빈 김 주한미대사대리 역시 대북정책 통제에 나섰다. 그는 정부 고위 관료들을 연이어 만나 “대북제재와 북한인권문제로 계속 압박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한미연합훈련 유지를 강조했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의 “핵 없는 한반도” 발언까지 문제 삼으며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왜 이토록 통제하는가. 한국이 윤석열 정부와 다른 길을 택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평화정책을 실행할 경우, 대중국 봉쇄 전략에 균열이 생기고 미 현지 관료들의 영향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자주파 vs 동맹파 갈등? 한반도 평화냐, 동맹 종속이냐의 문제다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누가 행사해야 하는가. 외교부가 제2의 한미워킹그룹인 ‘한미 대북정책 조율 협의체’를 출범시키며 논란이 커졌다. 한미워킹그룹은 2018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사전 승인하는 기구로 작동했다. 이산가족 상봉, 남북철도연결, 인도적 지원까지 번번이 막아 나선 경험을 교훈 삼는다면, 반복돼서는 안 될 정책이었다. 전·현직 통일부 장관과 시민사회단체가 잇따라 반대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부 언론은 이를 부처 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보도한다. 그러나 본질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에 종속될 것인가, 아니면 한국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조건을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내년 4월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남북대화의 기회로 보고 있다면,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 조치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과 대북적대정책 완화·폐기하는 연속적 조치로 북미, 남북대화의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강한 통제가 작동하는 현실에서, 정부 부처의 힘만으로 정책 전환은 어렵다. 국회와 시민사회가 함께 나서 정부의 결단을 촉구해야 한다. 우리의 힘으로 한반도 평화의 길, 남북대화의 길을 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