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세협상에서 국민의 관심은 3,500억 달러의 대미투자에 집중되었다. 미국이 3,500억 달러라는 큰 금액을 현금으로 직접투자할 것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최종 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일반투자 2,000억 달러(연간 한도 200억 달러 투자)와 우리 기업의 직접투자(FDI), 보증, 선박금융 등을 포함해 1,500억 달러를 조선협력에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에 투자대상을 ‘상업적 합리성’있는 분야로 제한했고, 한국 산업통상부장관이 협의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낼 수 있으며, 20년 안에 원리금이 상환되지 않으면 수익배분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까지 삽입했다. 연간 투자 상한액 설정, 협상구조, 수익배분 등에서 일본보다 협상을 잘했다며, 협상 결과를 두고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과연 ‘선방’한 협상일까? 국민경제에 끼칠 악영향을 생각해본다면, 그 ‘환호’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지 확인할 수 있다.
대미투자 3,500억? 사실은 6,000억 달러 이상!
대미투자가 3,500달러라고 밝히고 있지만, 사실은 그와 다르다. 6,0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8월 한국정부는 1,000억 달러의 천연가스를 구매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은 362억 달러(보잉기 103대), LS그룹 30억 달러(전략망 인트라), LS 그린링크 제조설비 7억 달러, 포스코인터내셔널 희토류 분리, 정제 복합단지 설립 등에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무기 또한 2030년까지 250억 달러를 구매하게 된다. 이렇게 팩트시트에 담겨있지 않은 별도의 민간투자까지 합치면 투자금액은 6,000억 달러를 넘게 된다.
연간 투자 상한선을 200억 달러로 정했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니다. 경제구조, 화폐가치가 과거와 다르다고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한국정부가 IMF에 처음 요구한 구제금융은 200억 달러 규모였다. 즉, 한 나라가 당장 부도날 위기를 막기 위해 필요한 최소 비용이었다는 말이다. 정부는 200억 달러 중 150억 달러는 외환자산 운용수익으로 충당 가능하다고 밝히며 외환보유고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동안 발생한 운용수익이 외환보유액으로 적립되었던 만큼, 사실상 외환보유액은 줄어들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가 아니라 미국에 직접투자해야하는 만큼 대기업의 국내제조업 투자 축소, 일자리 감소, 산업공동화는 피할 수 없다.
협상구조도 문제다. 투자처와 관련해서 한국 산업부장관이 맡은 협의위원회가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만, 결정권을 가진 투자위원회는 미국 상무장관이 이끈다. 사실상 미국의 의사가 그대로 관철되는 구조다. 수익배분도 문제다. 원리금 상환 전에는 한국과 미국이 5:5로, 이후에는 1:9로 배분한다고 한다. 협상이라고 하지만 한국에 유리한 것은 하나도 없다. 협상이 아니라 미국의 ‘약탈’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비관세장벽 대폭 완화는 한국의 안전·환경·식품·디지털 주권 포기 선언!
미국 무역대표부(USTR)은 올해 4월, 2025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를 제출했다. 자동차 안전기준, 식품 검역, 개인정보 보호, 환경 검사 등의 조치를 무역장벽으로 규정지으며, 이를 근거로 상호관세 25%를 주장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환경,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규제를 ‘무역장벽’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번 한미관세협상에 이를 그대로 관철했다. 관세 15%와 대미투자금액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있을 때, 미국은 자국 빅테크 기업의 이익을 위해 한국이 각종 규제를 다 풀게끔 한 것이다. 한국의 입법과 정책자율성, 주권은 그대로 침해받았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한국의 안전기준에 부합하지 못해도 미국의 안전기준에 부합하면 수입할 수 있도록 하며, 배출가스 검증 절차도 없앴다. 미국차 수입 상한선도 폐지했다. 국민의 환경과 안전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농식품 분야에서도 다르지 않다. LMO 규제를 완화하고, 미국산 과일, 채소 등 원예작물 수입 검역절차를 전담하는 ‘US 데스크’도 신설하기로 했다. 그동안 미국이 한국의 검역절차가 길고 까다롭다고 계속 지적해왔던 만큼, 미국의 규제 완화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했지만 LMO 감자, 미국산 사과를 만나는 일은 먼 일이 아니게 되었다. 미국 농업계의 로비가 그대로 수용된 결과, 우리 국민의 먹거리 안전이 위협받게 되었다.
디지털 분야에서도 망 사용료 금지, 온라인플랫폼 규제 금지, 개인정보·위치정보 반출 등 구글·애플·메타 등 초국적 빅테크 기업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구글·넷플릭스 등 해외 빅테크는 막대한 트래픽을 사용하면서도 망 이용료를 내지 않는 상황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온라인플랫폼의 독점과 불공정 거래를 규제할 입법은 미국의 간섭에 가로막혔다. 심지어 국가안보와 직결된 정밀지도·위치정보까지 반출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이번 협상은 시장의 거대한 압력에 국민의 안전·환경·식품·디지털 주권을 그대로 내준 협상이다. 이번 합의를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