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아직 안 다녀오셨어요? 농구는 인생이에요. 한 번만 다녀오세요.”

제가 저 빼고 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하 슬램덩크)를 본 것 같다고 하자 친구가 한 말입니다. 소년만화가 인생씩이나 되냐, 어떤 점이 그렇게 좋냐고 했더니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과 세계의 부조리를 받아들인 이들이 무너지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소년만화에 이렇게까지 철학적인 해석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저도 지금은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슬램덩크는 지금까지 340만 명이 봤고 한때 <아바타-물의 길>과 재개봉한 <타이타닉>보다 박스오피스 순위가 높게 잡히기도 했습니다.

제 주변만 이런 것은 아닙니다. 관람객 중 30대가 45%이고, 그 뒤를 40대와 20대가 각각 25%와 22%로 따라갑니다. 원작 만화를 본 적도 없는, 기껏해야 인터넷에서나 접해봤던 세대도 <슬램덩크>를 열심히 보고 있는 것입니다. 20대는 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이 작품에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걸까요?

 

'문제 있는' 등장인물들

<슬램덩크>의 주인공 팀인 북산고등학교의 주전 선수는 다섯 명인데, 이들은 모두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일반적으로 뛰어난 농구선수가 되기에는 부적합한 성질들입니다.

원작 만화의 주인공인 강백호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지만 농구를 시작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초짜이고, 함께 1학년 콤비로 나오는 서태웅은 재능은 뛰어나지만 팀워크가 부족합니다. 3학년 정대만은 중학MVP 출신이지만 중간에 부상을 입고 방황하느라 공백기가 길었고요. 팀의 주장인 채치수는 전국제패라는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지만 독선적이라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습니다.

영화는 무패 기록을 가진 우승 후보팀 산왕공고와의 경기를 통해 선수들이 각자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려움을 극복한다고 하면 과거의 일을 반성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쪽을 생각하겠지만, 주인공들이 성장하는 방식은 자신을 바람직한 선수상에 맞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단점은 많은 경우 장점의 양면이니까요.

강백호는 산왕공고에게 큰 점수 차로 밀리는 상황에서 오히려 같은 팀원들을 도발하며 자신은 초짜이기 때문에 농구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칩니다. 서태웅은 결정적인 순간에 팀원들을 믿고 패스를 시도해 득점합니다. 정대만은 공백기의 영향으로 다른 주전 선수들에 비해 확연히 체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달아 3점 슛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끌고 갑니다. 채치수는 자신이 정말로 원했던 것은 전국제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길을 함께할 동료라는 것을 깨닫고 듬직한 주장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단점 역시 나의 모습

이런 서사는 주인공인 송태섭의 서사에서 더 극적입니다. 송태섭의 키는 168cm인데, 농구선수를 하기에는 상당히 작은 키입니다. 저와 같은 키거든요. 과거 회상 씬에서 송태섭의 키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형과 비슷합니다. 압도적인 신체조건을 가진 선수들을 뚫고 나가기 어렵겠지요. 송태섭의 연습 장면에는 드리블이 많이 등장하는데,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으로 보입니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송태섭은 압박을 뚫지 못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줍니다. 처음으로 골을 넣었던 형과의 일대일에서도 옆으로 피하면서 공을 던졌고, 회상 장면에서 정대만과 일대일을 할 때도 드리블만으로 자신을 뚫을 수는 없으니 더 세게 압박해 보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경기 막바지에 송태섭은 몸을 낮춰 이를 돌파합니다. “드리블은 키 작은 선수의 살길이라고!”라는 대사를 남기면서요.

농구선수에게 치명적인 작은 키와,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던 드리블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죠. <슬램덩크>는 단점 역시 나의 모습이고 그게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오히려 뒤집어 보면 그게 강점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원작에서도, 영화에서도 천재성보다 노력과 투지가, 뛰어난 선수 한 명보다는 팀워크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합니다. <슬램덩크>에서 북산고의 중요한 득점 순간은 전부 팀원들이 서로를 믿고 패스했을 때 나옵니다. 강백호가 채치수에게 “정우성은 패스를 안 하거든.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스타플레이어 한 명보다 서로를 믿는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작가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또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바로 끝나는 겁니다”라는 안 선생님의 유명한 대사와 주인공 송태섭의 “경기의 흐름은 우리가 바꾸는 거라고”라는 대사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슬램덩크가 호소력 있던 이유

지금의 청년세대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모든 문제에 대해 자기 탓을 하게 됩니다. 요즘은 아이돌도 좋은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자란 모습, 부모님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모습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은 성공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남을 위하고 믿는 것보다 각자도생이 똑똑한 삶의 태도가 되고 노력이 보답받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코인과 주식에 열중하는 모습이 청년세대의 특징이고 연대에 부정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자유주의 사회가 청년에게 반영된 모습일 뿐입니다. 존중, 공동체, 노력의 보답 같은 인간적 가치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슬램덩크>가 20대에게도 호소력이 있었던 것은 청년세대가 접하기 어려운 이런 가치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마지막에 강백호는 선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르는 부상에도 팀원들과 뛰고 있는 지금이 자신의 영광의 순간이라고 말하며 코트로 나갑니다. 여러분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혹시 이 글이 발행되는 시점에 이미 영화관에서 내려갔다면 만화 <슬램덩크>도 있으니 각자 개성을 가진 북산 선수들의 분투기를 보며 나는 지금을 영광의 순간으로 살고 있나 생각해보길 추천합니다.

 

김예은 당원(청년진보당)

 

저작권자 © 진보당 기관지 너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