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지역경제를 살릴 대안금융, ‘지역공공은행’

불평등 해소의 새로운 대안, 공공서비스 공영화와 지역공공자산 ④지역공공은행

2025-10-02     조민경 정책실장

올해 4월 진보당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대안 ‘공공서비스 공영화를 위한 지역공공자산’이라는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진보정책연구원 책임하에 국민입법센터가 연구를 수행하였고, 진보당의 주요한 정책 간부들이 이 새로운 정책수립에 참여하였습니다. 너머 독자들의 지역공공자산 정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차례 나누어 정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대한민국은 저출생·고령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이라는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2021년 기준, 전체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살고 있으며, 특히 청년층의 55%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비수도권 지역은 일할 사람이 줄어들고, 인구감소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인구감소는 지역 경제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역의 경제 활동 규모와 생산 수준을 보여주는 지역내총생산(GRDP)을 보면 이 역시 수도권으로의 편중이 심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23년 기준 GDP의 절반이 넘는 52.4%가 수도권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생산도, 소비도 수도권으로 더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방의 성장률은 정체되고, 지역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핵심 동력인 기업과 자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1,000대 기업의 86.9%가 수도권에 있고, 지역에서 창출된 부는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자금도 마찬가지입니다. 2023년 기준, 수도권과 지방의 금융기관 예금 비중 격차는 무려 42.4%p에 달해, 10년 만에 8.6%p나 더 벌어졌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 성공할 수 있을까?
 

그동안 수도권 집중, ‘지방소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기업의 외부 유치, 대규모 토목공사 등에 매달렸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5극 3특’을 제시했습니다. 수도권과 동남권, 대경권, 중부권, 호남권 5개 메가시티와 강원, 전북, 제주 3개 특별자치도를 고르게 발전시키겠다는 것입니다.

▲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5개 메가시티, 3대 특별자치도) 개념도 ⓒ 지방시대위원회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은 ‘지방소멸’의 해답이 될 수 있을까요? 지역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재정, 금융, 교육과 같은 핵심 권한이 중앙에 집중된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 지방정부는 자체의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우기보다, 중앙정부의 ‘공모사업’ 따내기에 급급합니다. ‘5극 3특’이 이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더 큰 규모의 ‘공모사업’ 경쟁에 불을 지피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5극의 광역권은 의도와 달리 초광역 거점과 주변 도시, 농어촌지역과의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초광역 거점이 다른 지역의 인구와 자원을 흡수하는 새로운 ‘블랙홀’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 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큽니다.

‘5극 3특’은 또 다른 성장주의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지역균형발전을 이루어내려면 지역 내부에서 경제적 동력을 개발하고, 내적인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발전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 ‘시금고’마저 외면하는 지역의 돈
 

지역이 스스로 살아남을 내적 동력을 회복하려면, 지역의 금융 시스템을 혁신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은 지역의 활력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시중은행들은 지역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본사로 보내 수도권에 재투자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벌어들인 돈이 지역을 위해 다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 등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역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역 금융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지방은행의 역할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과 6개 지방은행(부산·경남·광주·전북·제주 및 지난해 6월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옛 대구은행 포함)을 비교해보면, 지방은행의 대출증가율은 시중은행의 30% 수준입니다. 지방은행의 자금공급 기능이 취약합니다.

지방은행은 지역경제는 물론 공공부문에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방정부의 재정운영에 필요한 자금도 지방은행이 아니라 시중은행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매년 발표하는 ‘지방자치단체 금고 지정 현황’을 지자체 금고의 대부분은 농협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뒤를 잇는 은행이 신한은행, 우리은행입니다. ‘시금고’조차 지방은행이 아닌 시중은행이 독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들조차 지방은행 대신 금리 조건이 좋다는 이유로 시중은행을 이용하며 지역의 자금을 외부로 유출시키고 있습니다. 부산에 있는 해양수산개발원은 32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은행에 예치하고 있지만, 지방은행에는 단 한 푼도 예치하지 않았습니다.

금융이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외면하는 이 상황을 그대로 두어야 할까요? 금융이 사적 이윤 추구에만 활용되는 것을 막고, 지역 경제의 내적 동력을 키우는 곳에 쓰일 수는 없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지역공공은행’입니다.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 지역공공은행은 무엇인가
 

지역공공은행은 지역 금융배제를 극복하고, 지역 경제의 자립도를 높이며, 공공사업을 활성화해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은행입니다. 일반은행의 지방은행이 지역을 기반으로 영업하나 본질은 영리 금융회사라면, 지역공공은행은 지역발전을 위해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특별자치도·시·군·구(자치구)와 같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설립해서, 해당 지역을 업무구역으로 하는 공적인 은행입니다.

지역공공은행은 지자체의 예산기금을 예금으로 수탁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 내 자금 수요자에게 투자 및 융자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자체가 최대 지분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기존의 금융기관과는 달리, 지역의 공공적 목표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투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발생한 수익은 지자체 재정으로 환원되며, 지역순환경제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지역공공은행은 지역정책 실현의 든든한 파트너입니다. 재생에너지 공영화, 버스 공영화 등처럼 지역 공공서비스를 공영화하려면 지자체 예산 투입이 필수적입니다. 지자체들은 중앙정부로부터 받은 재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물론, 재원 조달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동안은 민간 금융기관이나 펀드에 의존하는 방식이라, 공공사업으로 발생한 수익이 지역과 주민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민간 자본의 배만 불렸습니다. 지역공공은행은 공공서비스의 공영화 같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생산된 가치가 다시 지역사회에 재투자 될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공공은행은 시민들의 든든한 지원군의 역할 또한 합니다. 시중은행이 돈을 빌려주기 꺼려하는 영세 소상공인, 사회적기업, 자영업자들에게 낮은 금리의 대출을 직접 제공합니다. 기존 은행들이 수익성을 추구하며 금리가 높은 대출을 선호하고, 담보 능력이 부족한 경제적 약자들에게는 문턱을 높이는 ‘금융 배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신협 등 달리 은행으로 설립하는 이유는 은행이 ‘신용창조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은행이 이 ‘신용창조의 기능’을 사적 이윤 추구에 활용해 왔다면, 지역공공은행은 이 기능을 경제와 사회, 환경 등 지속가능한 발전에 사용하게 됩니다.

지역공공은행이 기존 은행과 다른 점은 업무의 공공성뿐만 아니라 운영의 민주성도 가진다는 점입니다. 운영위원회와 이사회에 노동자, 농민, 사회적 경제단체가 추천한 위원이 과반수를 차지하며, 노동자 이사의 참여를 보장해 실질적인 경영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또한, 지자체가 금융감독 기능을 직접 수행해 투명성을 높입니다.

 

지역공공은행, 가능하다.
 

지역공공은행은 단순히 새로운 발상이 아니라, 이미 실현되고 있는 모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노스다코타 주정부가 설립하고 소유·운영하고 있는 미국 노스다코타 주립은행 (BND)입니다. 1919년 거대 금융 자본에 착취당하던 농민들이 직접 힘을 모아 설립한 미국 유일의 주립은행으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공황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모두 이겨내고 지역 경제를 지탱해 왔습니다.

지역공공은행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지방소멸과 인구감소, 기후위기 등에 대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는 만큼, 지역공공은행의 필요성과 도입에 대한 공감대도 빠르게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