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이용우 기획실장

디트로이트가 돌아오고 미국이 돌아왔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설에 환호가 쏟아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9월 14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오토쇼에 방문해 미국산 전기차를 홍보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노력을 한껏 과시했다. 디트로이트는 미국 자동차 부활의 상징이다. 디트로이트는 미국 자동차 대표기업인 포드와 GM, 크라이슬러가 모여 있는 ‘영광의 도시'였지만 점차 독일, 한국 등에 밀려 쇠락하기 시작했다. 바이든은 전기차 세액공제지원 혜택을 소개하며 “우리가 자동차시장, 제조업의 미래를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인플레 감축법(IRA)의 효과를 강조했다.

 

IRA는 무엇

IRA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의 줄임말이다. 미국 상, 하원을 거쳐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에 따라 2022년 8월 16일부터 발효되었다. 이 법안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미국 국민 생활 안정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되었으며 4가지 효과(△의약품·에너지 가격 억제를 통한 물가 안정△의료비와 에너지 비용 감소△청정에너지 산업발전으로 일자리 창출 기여△미국 내 설비부족으로 인한 공급난에 대비해 공급망 재편)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총 7,400억 달러(966조 원) 규모의 지출 계획이 세워졌다. 재원확보를 위해 대기업에 최소 15% 법인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애초 바이든이 추진했던 ‘더 나은 재건(BBB)’ 법률안에서 예산 규모를 줄이고 이름을 바꿔 의회 문턱을 간신히 넘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바이든은 정부 출범 후 최대성과라고 자평하고 있다. 무엇이 바이든을 이렇게 흥분하게 만들었을까?

 

IRA가 겨눈 3가지, 중간선거·중국·미국 중심주의

법의 이름과 명분만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법인세 인상과 복지향상 등 진보적 내용도 담겨 있다. 직접적인 국제통상 관련 목적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세부 내용을 보면 이 법안이 무엇을 겨누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이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왜 우려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첫째, IRA는 미국 중간선거를 겨누고 있다.
이 법의 모태가 된 ‘더 나은 재건(BBB)’ 법안이 지난해 11월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처리되지 않았다. 그 후 IRA로 수정·축소된 후 올해 7월 27일 공개되었다. 이후 처리 속도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상원 통과(8월 7일)에 이어 하원까지(8월 12일) 이례적으로 빠르게 처리됐다. 의회 내 충분한 논의 없이 긴박하게 진행되면서 밀실,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11월 8일에 열리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선거용 법안’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중간선거는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100명 중 35명을 선출하는 매우 중요한 선거이다. 대체로 대통령 임기 중간에 열리는 선거는 집권당에 불리한데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인플레이션 등으로 바이든의 지지율은 30%대에서 정체 중이다. 따라서 바이든 입장에서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제적 치적을 위해 IRA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둘째, IRA는 중국을 겨냥했다.
미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다는 목적하에 중국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전기차 전환이다.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산업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의 명분을 앞세우면서도 결국 전기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국을 끊어내겠다는 것이 바로 IRA가 노리는 핵심이다. 지난 8월 9일 바이든이 서명한 ‘반도체 산업육성법’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되었다. 미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노골적 반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셋째, IRA는 철저한 미국 중심주의를 선언한다.
지금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표면화 되는 ‘신냉전 시대’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 이면에는 이념으로 대립하던 냉전 시대의 구도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갈등이 내포되어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IRA이다. 이념과 동맹으로 설명되지 않는 철저한 자국 이기주의, 미국 중심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세액공제를 통해 미국산 전기차를 살 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IRA의 발효에 따라 조건이 새로 생겼다.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제품이어야 한다. 중국 외에도 한국, 영국, 유럽연합 등 소위 미국의 동맹국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국내 전기차 회사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WTO로 상징되는 무역 질서도 무시되었다.

동시에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이 뭉쳐 반도체 동맹(칩4동맹)을 결성해 중국을 고립시키자고 제안하고 있다. 미국 이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보호주의’를 운운하며 우방까지 동원하는 모양새다.

속수무책 윤석열 정부

이런 미국의 전략에 우리는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어떤 원칙을 견지할 것인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미국의 전략 속에서 ‘한미동맹’이라는 흘러간 옛 노래만 반복하고 있다.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도 정확하지 않다. 미국에서 흘러나오는 희망 섞인 메시지에 기대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8월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방한 당시 보여준 대통령의 대응은 무기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주무부처인 산업부와 외교부의 IRA 입법동향 파악이 전무했다는 지적도 있다.

10월 26일 현대차 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생산공장 설립을 위한 기공식을 했다. 2025년 상반기부터 아이오닉5를 시작으로 30만 대를 생산한다. 국내 일자리와 바꾼 셈이다. 제2, 3의 IRA도 속도를 내고 있다. 생명공학·바이오 관련 행정명령(9월 12일) 등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는 모두 우리나라의 미래 핵심 산업이다.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미국의 배려와 선의를 요청하는 것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IRA가 가져올 파장은 우리의 생각보다 깊고 클 수 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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