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룰라, 당선 확실시

오는 10월 2일 1차 투표를 치르는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당(PT당) 소속의 룰라 전 대통령(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76세)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 9월 21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룰라는 44%의 지지를 얻어 35%에 그친 보우소나루 후보보다 10% 앞섰다. 룰라의 지지율은 1주일 전 여론조사보다 2% 상승한 것으로 선거 레이스가 시작된 이후 줄곧 우세를 점하고 있다.

룰라는 노동자당뿐만 아니라 ‘브라질공산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들의 선거연합체인 <브라질 희망연맹>의 후보로 선출되었고, 심지어 2006년 대선에서 경쟁 상대였던 제라우두 아우키민 전 상파울루 주지사(진보성향 ‘브라질사회당’ 소속)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며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하지 못하면 결선투표를 치러야 하는데, 1차에서 아깝게 50% 득표를 넘지 못하더라도 10월 30일에 열리는 결선투표를 통해 무난히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재로 손가락을 잃은 금속노동자 출신 대통령

룰라가 항상 자신 있게 대중들에게 내보이는 왼손에는 새끼손가락이 없다. 금속노동자로 일하며 산재로 잃었기 때문이다. 룰라의 인생사는 브라질의 노동운동과 진보정치 역사 그 자체이다. 브라질에서는 한국의 87년 노동자대투쟁보다 9년이나 앞선 1978년에 노동자들의 대중파업이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민주노동조합운동에 불이 붙었다. 한국과 다른 점은 노동조합보다 진보정당 건설이 더 앞섰다는 것. 브라질의 노동자들은 1980년 2월에 노동자당을 창당하고 3년이 지난 1983년이 되어서야 ‘노동자중앙연합(브라질노총, CUT)’을 창립한다.

1975년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전국적 인물로 떠오른 룰라는 1986년 상파울루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1989년, 1994년, 1998년 세 차례의 대선에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하였고, 네 번째 도전이었던 2002년 대선에서 결선투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극빈층 해소에 몰두한 대통령

룰라가 당선되었던 시기는 브라질이 IMF 구제금융을 받아 빈곤층이 날로 늘어나는 때였다. 그러한 배경 속에 대통령에 당선된 룰라가 중요하게 챙긴 사업은 바로 극빈층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노동자당 정부가 제안한 복지 프로그램은 바로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직역하면 ‘가족 지갑’이라는 것인데, 6~17세 자녀를 둔 빈곤층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는 제도로 브라질 국민 4명 중 1명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정도로 대중적인 제도이다.

보우사 파밀리아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자녀를 학교에 잘 보내고 정기적으로 예방접종을 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아이의 학교 출석률이 낮아지면 지원이 끊긴다. 임산부의 경우 산전·산후 진료 및 관련 서비스를 충실하게 받아야 한다. 지원금이 엉뚱한데 쓰이지 않게 하기 위해 엄마에게 입금하는 것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이 프로그램이 시행되며 브라질의 빈곤율은 2004년 22.4%에서 2015년 3.4%까지 감소했다. 우파 정부인 보우소나루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극빈층이 늘어나자 세계은행과 OECD가 나서서 ‘보우사 파밀리아를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을 정도로 그 효과가 매우 강력한 제도였다. 노동자당 정부는 복지 정책에 그치지 않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집권 8년간 2배 인상)하며 소득증가→소비증가→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외환위기를 겪은 브라질이 단숨에 세계 8위의 GDP까지 올라선 것은 모두 노동자당 집권 기간의 성과였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룰라는 퇴임할 때까지 87%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할 수 있었고,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노동자당 후보인 지우마 호세프를 당선시킬 수 있었다.

세계진보정치 역사에 새 길을 낸 노동자당

지금은 전 세계에서 시행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일부 도입된 ‘참여예산제’도 브라질 노동자당이 세계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1989년 선거에서 노동자당은 브라질 남부의 ‘포르투알레그리’ 정부를 집권하게 되는데, 당시 여소야대 구도였던 지방정부의 구도에서 과감하게 참여예산제를 제안하며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참여예산제가 시행되면서 도시의 상수도 보급률이 늘어나고 공립학교의 수와 학생 수도 전에 없이 늘어났다. 더 중요한 성과는 주민들이 ‘참여하면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최근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민대회’와 직접정치의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법쿠데타로 밀려났던 노동자당의 부활

룰라의 후임이었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탄핵의 배경에는 수출 불황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우파 포퓰리즘 정치의 바람이 불면서 지지기반이 흔들린 점도 주효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요인은 바로 ‘부정부패’였다. 뉴스에는 연일 노동당과 정부인사들이 부패혐의로 수사를 받고 구속되는 소식이 전해졌다. 실제 부정한 행위를 저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부정부패 척결의 깃발을 치켜들고 이른바 ‘세차작전’이라는 작전명의 대규모 기획 수사를 벌여 브라질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람은 브라질의 연방 판사인 세르지우 모루. 모루는 브라질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을 대거 수사하고 구속했다. 예비구금제도를 이용해 구속을 유도하고, 언론플레이를 통해 정치인들을 공격했다. 재판과정에서 기준과 원칙을 모두 무시하고 증거를 공개하며 대중의 분노를 조직했다.

모루는 검사에게 수사를 지시하기도 하고, 유죄를 인정하거나 증언하면 형량을 낮춰주는 ‘플리바겐’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구속하고 유죄판결을 얻어냈다. 브라질 사회에 워낙 뇌물 문화가 만연했던 탓에 모루의 수사는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모루의 수사는 룰라에게까지 이어졌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열린 2018년 대선에 출마를 선언하고 압도적 지지율을 보이던 룰라는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뇌물수수 혐의를 뒤집어쓰고 수감되어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2021년 4월, 관련 판결이 무효화 되며 580일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하게 되었다. 12년 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77세 노동운동가가 다시 노동자당과 브라질의 재건을 위해 화려하게 복귀한 순간이었다.

 

룰라의 당선은 2차 핑크타이드의 화룡점정

중남미지역에 진보정부가 다수 들어선 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시대를 일컬어 ‘핑크타이드(Pink tide)’라고 부른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사회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붉은 물결’에 비교해 ‘분홍 물결’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2020년대 들어서며 ‘제2의 핑크타이드’로 불릴 만큼 남미지역 전체에 진보정부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5월 콜롬비아에서 게릴라 출신의 구스타보 페트로가 대통령에 당선된 데 이어 이번에 브라질에서 룰라까지 당선된다면 남미 주요 국가에 모두 진보정부가 들어서는 그림이 완성된다.

 

룰라,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룰라는 전 세계적인 스타지만 비판도 적지 않다. 애초 당선될 때부터 투기자본에 투항한 바람에 집권 내내 부자들에 대한 조세제도조차 바꾸지 못했고, 수출 호황에 기댄 세수 확보만으로 복지정책을 펼치다 보니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었다는 비판이 있다. 당선을 위해서 연합정치의 폭을 무리하게 넓히다 보니 원칙을 내던졌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사법쿠데타를 딛고 일어선 룰라와 노동자당의 재기는 세계진보정당운동사에 중요한 대목으로 기록될 것이며, 특히 유럽에 극우정치의 바람이 부는 이때에 남미 좌파블록의 확대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모쪼록 룰라의 당선과 남미 좌파 블록의 완성을 통해 다른 세계를 향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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