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진보당 주최로 대한민국 최초, 주부들의 행동인 ‘주부, 그림자노동 말하기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진보TV로 송출된 이 행사에서는 그동안 가정 내에서 독박육아와 돌봄불이익, 경력단절,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등 주부들의 생생한 고충들이 쏟아지는 자리였습니다. 주옥같았던 주부들의 주요 발언 일부를 모아봤습니다.

9월 15일 진행된 '주부, 그림자노동 말하기 대회' 행사 사진
9월 15일 진행된 '주부, 그림자노동 말하기 대회' 행사

"주부들은 스위치가 24시간 켜진 채로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편하게 논다는 말이 가장 화나게 합니다.”
"왜 아빠는 핸드폰 소리는 잘 들으면서 아이 울음소리는 못 듣는 걸까요.”
"코로나로 학교가 문 닫으며, 저와 아이의 일상이 사라졌어요. 엄마에게 모든 책임이 집중됩니다."
"아이를 다 키워도 돌봄은 끝나지 않습니다. 퇴직한 남편 밥해주기, 손주를 돌보는 황혼육아 등등 도대체 저의 정년퇴직은 언제일까요?”

평가는 긍정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평소 할 말 많고, 사연이 많았던 주부들의 공감지수가 높았습니다. 진보당이 통일, 노동운동 말고도 “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며 감사해하는 당원들도 계셨습니다. 제주, 광주 등 지역에서는 여건상 스튜디오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지역에서 자체로 진행할 고민을 갖게 되었으며, 동네 학부모회 등에도 이질감 없이 전파시킬 수 있는 컨텐츠라는 평도 줄을 이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절제된 표현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분노와 억울한 감정이 더 신랄하게 드러났으면 좋았겠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부 개인이 감내해야했던 ‘돌봄과 가사노동’ 문제를 사회시스템의 문제로 ‘정치화’해낸 것이 가장 큰 성과였습니다. 지역과 배경이 달라도 엄마, 주부가 된 이후의 삶은 비슷해져버리는. 그래서 주부들이면 누구나 겪는 흔한 일상의 문제에 진보당이 다가갔던 것입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이 행사는 사실 ‘‘주부’ 그림자노동 이어말하기, 소책자 기획단’이 이번에 「여기 노동이 있다 – 주부 그림자 노동 이어말하기」 책자를 발행하며 기획된 대회였습니다. 기획단에서 총 19명의 주부들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책을 엮었는데, 인터뷰 과정에서도 참 기구한 사연들과 이야기들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끝나지 않은 주부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지난 9월 18일 ZOOM으로 진행된 기획단 좌담회에 기자가 배석하여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지난 9월 18일 ZOOM으로 진행된 '주부' 그림자노동 이어말하기, 소책자 기획단의 좌담회
지난 9월 18일 ZOOM으로 진행된 '주부' 그림자노동 이어말하기, 소책자 기획단의 좌담회

서로에게 힐링이 되었던 금쪽같은 인터뷰

주부 인터뷰는 의외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선 기획단이 인터뷰 전문가는 아니었기에, 별도의 교육도 받고 철저한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코로나로 집 밖에서의 만남이 어려웠습니다. 물론 아이를 키우다보니 인터뷰도 쉽지 않았고, 정당에 대한 부담감도 작용했으므로 섭외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밤 12시에 ZOOM으로 인터뷰를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한 땀 한 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럼에도 기획단은 인터뷰를 통해 하나같이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고들 하십니다. 인터뷰를 하며 예전 육아시절이 되살아나고,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였던 것입니다. 많은 참가자들이 “이렇게 긴 시간동안 자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며, 한맺힌 사연들을 쏟아냈습니다. 세 아이를 키웠던 엄마는 아이가 아플 때 소아과를 갔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일찍 퇴근해도 소아과는 문을 닫으니, 어쩔 수 없이 엄마 혼자서 아이 셋을 유모차에 태우고, 안고, 업고 병원을 가며 서럽고 힘들었던 사례였습니다. 그야말로 가혹하게 버틴 여성들의 일상을 이런 식으로 방치해놓고, 애를 낳으라는 것은 사회적 폭력일 수 있다는 호소가 울림이 컸습니다. 이외에도 다자녀 주말부부의 사연, 친정엄마가 알츠하이머로 돌보다가, 이번엔 시댁 어머니까지 돌보고 계신 주부 사연 등등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눈시울 붉히고 마음이 무거웠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나에게 자궁이 있는 것이 문제인가?

주부들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제로가 되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회인으로서의 존재가치가 마이너스로 내려가는 ‘역변’의 느낌을 만난 모든 분들이 공통으로 겪었다는 것이죠. 사회에서는 쉽게 ‘경단녀’로 칭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다시 재기할 수 있을지 두려움과 자기 비하에 빠지는 고통스러운 문제입니다.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는데, 그 사랑이 엄마인 자기 자신에게는 굴레가 될 수 있다는 잔인한 모순이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오죽하면 ‘결국 근본원인은 나에게 자궁이 있어서인가?’라고 절규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처럼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다가, 직장생활을 하려면 결국 누군가에게 돌봄을 위탁해야하고, 초등학생이 되면 다시 경력이 단절되고, 힘들게 키워 자녀가 결혼하면 손주를 출산하고, 그러면 다시 황혼의 육아를 해야 하는 평생의 사이클. 이 ‘맘고리즘’이라 불리우는 돌봄노동의 굴레에서 대부분의 엄마들은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기획단의 좌담회는 사실상 제2의 성토대회가 되어버렸습니다.

 

“10월 20일 주부파업으로!”

지난 9월 15일에 개최된 '주부' 그림자노동 말하기 대회에서 촬영한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지난 9월 15일에 개최된 '주부' 그림자노동 말하기 대회에서 촬영한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진보당 김재연 대선후보는 다가오는 10월 20일 불평등 세상에 저항하는 노동자 행동의 날, 바로 ‘주부파업’을 제안하였습니다. 주부들의 가사, 돌봄은 우리 사회를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가정 내 재생산 ‘노동’입니다. 주부들의 노동이 없다면 노동자가 노동을 지속할 수도 없고, 미래의 노동자를 키워낼 수도 없습니다. 그동안 가사 및 돌봄 ‘노동’을 ‘사랑’으로 포장하여 여성들에게 떠맡겼던 과거를 극복하고, 이제는 당당히 ‘노동’으로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행동이 곧 ‘주부파업’입니다.

진보당은 돌봄불평등 해소를 넘어 돌봄국가 건설의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돌봄가치가 명시된 새로운 헌법을 비롯하여, 돌봄을 국가정책영역으로 끌고갈 돌봄정책기본법 등 돌봄이 중심이 된 사회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업주부들이 돌봄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국민연금 지원제도, 출산과 육아 후 동일직급, 동일임금으로 복직하는 방안, 주부 및 돌봄노동자들의 권리 보장 등 종합적인 ‘돌봄혁명’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10월 20일 ‘주부파업’으로 가사 및 돌봄노동의 가치가 세상에 큰 울림으로 퍼지길 기대합니다. 돌봄을 더 이상 개인들이 짊어지는 것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는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도록 힘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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