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간 정책의 중복이 놀랍진 않아
더 큰 격차는 다른 곳에 있다

솔직히 좀 섭섭합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지난 총선 때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나와 민중당(현 진보당)의 ‘전국민고용보험제’를 홍보했습니다. 반응이 꽤 괜찮았는데, 총선 이후 원외 정당이 되어버려 추진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정의당이 전국민고용보험 법안을 당론 발의했습니다. 
진보정당 중에 가장 먼저 출마 선언을 한 김재연 대표가 ‘주 4일제’를 1호로 들고 나섰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적어도 진보진영 내에서는 이 주제를 선점하겠다는 나름의 정무적 판단이 있었는데요. 심상정 의원이 ‘주 4일제’를 간판으로 들고 나섰습니다. 정책을 널리 알려주어 고맙다고 해야 할지. 그런데 ‘심상정에 뒤이어 김재연이 주 4일제를 발표했다’고 쓰는 언론도 있는 것을 보고 나니 입맛이 참 씁니다. 

사실 이러한 정책의 중복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적어도 노동문제에서는 두 정당 간에 극적인 차이가 만들어지기 어려우니까요. 오히려 의원도 많고 정책연구원도 있는 정의당의 정책 속도가 단칸방 신세인 진보당과 별다른 것 없다는데 자부심이 드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주 심각하고 대단한 격차는 이런 것입니다.
의원이 없어 법안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주민 발의 형식으로 ‘울산시 고용보험료 지원조례’를 만든 사례. 울산만큼 당세가 크지는 않지만, 주민의 힘을 모아 끝내 ‘고용보험료 지원조례’를 발의해 낸 대전시당의 사례.
스피커가 작아 제 공약조차 제 것으로 취급받지 못했지만, 오늘도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현장으로 들어가는 당원들. 코로나19시대를 맞아 ‘돌봄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은 넘치지만 돌봄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가판을 펼치는 정치세력은 오직 진보당뿐입니다. 
이런 격차는 남다른 것입니다. 단언컨대, 이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정치세력이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몇 해 전 삼성전자 회장이었던 권오현 씨가 쓴 ‘초격차(超隔差)’라는 책이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여기서 ‘격’이라는 말은 ‘사이가 떨어지다.’ ‘멀어지다’라는 의미인데, 다른 집단이 따라잡을 의지를 포기할 만큼의 격의 차이를 만드는 것을 ‘초격차’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당이 선점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장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으니 민중 자신을 정치의 주인으로 세우겠다는 의지. 멀리서 손짓하는 정치가 아니라 민중 곁에 선 정치를 하겠다는 신념. 그리고 당원들의 헌신과 실천이 만들어 낸 초격차. 이 초격차에 진보정치의 향배가 걸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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