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은 5월부터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회 10만 국민동의 청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너머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연속기획으로 작년 남영동에 위치한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의 예술감독을 맡았던 권은비 작가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는 본인을 시각예술 작가라고 소개합니다. 이어 시각예술은 공공미술, 참여미술이라는 장르를 주로 하고 있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작업을 하는 분야라고 덧붙이며, 소녀상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공개적인 공간에 설치하는 작품, 대추리 벽화와 같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드는 작품 등의 예를 들며 너머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까지 보태줍니다. 권은비 작가는 왜 하필 현존하는 법체계이며 오늘도 이 법에 따른 처벌이 진행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란 무거운 주제의 전시에 참여하게 됐는지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권은비 작가는 대학 새내기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가 구속되고 재판을 받으면서 국가보안법을 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너머
권은비 작가는 대학 새내기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가 구속되고 재판을 받으면서 국가보안법을 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너머

설날에 집에도 못 가고 학내 화장실에서 찬물로 머리를 감는 선배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네요

권 작가가 국가보안법을 처음으로 접한 건 대학교 새내기 시절이라고 합니다. “미술 전공의 특성상 자주 작업실에서 밤을 새우며 작업을 하곤 해요. 설날 때였나, 새벽에 화장실에서 찬물로 머리를 감고 나오는 선배를 마주친 적이 있어요. 추운 겨울에 찬물로 머리를 감아서 그런지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더라고요. 그 선배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학내에서 수배 생활을 하고 있어 밖에 나가지 못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얼마 후 찬물로 머리를 감던 선배는 구속이 됐고, 선배의 재판을 응원하기 위해 참석한 법원에서 권 작가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선배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법정의 이전 재판이 강간 사건이었어요. 우리 선배가 강간 사건과 같은 취급을 받는 다는 게 도저히 납득이 안 될 정도로 큰 충격이었어요.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죠”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권은비 작가가 예술감독을 맡은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는 이전의 국가보안법 관련 전시와 비교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여성의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이라는 점입니다. 권 작가는 이에 대해 개인적인 맥락과 사회적인 맥락 두 가지로 나눠 접근해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 시절 당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남성 선배들도 많았지만,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마주하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피해 그리고 이로 인한 수배 생활 등이 매우 크게 다가왔다고 합니다. “2000년대 초반 이미 국가보안법에 대한 전시회는 꽤 있었어요. 그러나 당시 전시회는 전시회에 참가하는 예술작가들이 자신이 해석한 국가보안법의 부조리, 부당함 등에 대한 사진작품 위주였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과거 전시회와는 다른 접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권 작가는 사회적인 맥락으로 접근해 보자고 하면서 설명을 이어갑니다. “실제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거나 피해를 본 사람들의 과반수 이상이 남성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을 기록한 역사도 남성들의 서사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왔고 여성의 피해 사례들은 항상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일례로 자신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되었던 여성들도 다수 있지만, 남편, 아들, 딸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잡혀가거나 했을 때 생계를 이어 가면서 혹은 뒷바라지를 하면서 투쟁을 해오시는 민가협 어머니들의 모습들도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1차적 피해자는 잡혀간 사람들이지만, 그 못지않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과거에 다루지 못했던 시선들, 눈여겨 보지 않았던 시선들에 주목해 보자는 생각으로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을 기획하게 된 거죠.”

국가보안법 피해자의 어머니 등으로 구성된 민가협 회원들이 머리에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는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시회에 소개된 내용이다. ⓒ페이스북 국가보안법 박물관 - NSA Museum
국가보안법 피해자의 어머니 등으로 구성된 민가협 회원들이 머리에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는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시회에 소개된 내용이다. ⓒ페이스북 국가보안법 박물관 - NSA Museum

 

초롱초롱한 눈으로 전시회 너무 잘 봤다고 이야기해 주는 학생들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국가보안법이라는 주제는 분명 무거운 주제입니다. 실제 전시회 장소의 분위기 역시 무겁고 어둡고 조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직 아픈 상처로 남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기억일 수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아픈 상처이기에 스스로 묻어 둔 역사일 수도 있습니다. 이래서일까요? 권은비 작가는 침묵을 강요하는 세계, 부당한 국가권력에 의해 생각의 자유가 감금되는 세계를 뚫고, 우리에게 전해지는 용기 있는 말들 속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주목해 달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권 작가는 국가보안법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주요 타겟층을 국가보안법을 모르는 사람들로 잡았습니다. 물론 이미 국가보안법을 잘 알고, 폐지의 당위성에 대해 익숙한 사람들이 전시회에 찾아와 주시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해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파생된 폭력과 억압의 모습들을 널리 확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젊은층 2~30대 더 넓게는 중고등학생들까지를 주요 타겟층으로 생각하고 전시를 기획했어요. 그런데 막상 전시회를 시작하고 나니까 국가보안법을 잘 모르게 계신 일반분들이 보시기에 전시의 내용이 좀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하루는 대학생분들이 전시회를 보시러 오셨는데, 굉장히 오랫동안 전시를 보시더라고요. 안내 프런트에서 책을 구매하시려고 하다가 저와 직접 대면했는데, 정말 눈이 초롱초롱해 지면서 전시회 너무 잘 봤다고, 국가보안법이 이런 건 줄 몰랐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 때 정말 감사했죠”

 

독일에서도 살아 숨 쉬는 한국의 국가보안법

대학 졸업 후 그는 공공미술 분야의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독일을 선택한 이유는 물론 전공분양의 전문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나라에서 배울 게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일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국가보안법에 대한 또 다른 경험과 비판적 접근을 유발시키게 됐습니다. 통일이 된 지 30년이 지난 독일에서조차도 선거 시기만 되면 사라졌던 베를린 장벽이 나타난다는 걸 느꼈다고 합니다. 권 작가는 이에 대해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흡수하는 방식의 통일이 나타내고 있는 부작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유학 기간 중이었던 2018년 4월 27일 한국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마주했을 때 베를린에서는 남과 북의 독일 대사들과 교민들이 참석하는 기념행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굉장히 이상한 분위기였어요. 남북 정상들은 만나서 손잡고 화기애애한데, 베를린 행사 장소에 있는 남북 교민들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인사조차도 나누지 않고 있었죠. 베를린 사회에도 한국의 국가보안법의 서슬이 보이지 않게 펼쳐져 있는 거죠.”

당시 권 작가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며 여기저기 북쪽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다녔습니다. 대부분 대답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 한 분이 질문에 응해주시기에 용기를 내어 ‘제가 말 걸면 안무서 우세요?’라고 물었는데, 돌아온 답이 본인을 굉장히 부끄럽게 했다고 합니다. “남측 분들이 무서워하지 저희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남측 사람들이 저희를 피하잖아요. 우리는 피할 생각이 없어요”

권은비 작가는 침묵을 강요하는 세계, 생각의 자유가 감금되는 세계를 뚫고, 우리에게 전해지는 용기 있는 말들 속 한 글자 한 글자를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피해 경험을 접하며, 매번 마음 한쪽이 어두웠다고했다. ⓒ너머
권은비 작가는 침묵을 강요하는 세계, 생각의 자유가 감금되는 세계를 뚫고, 우리에게 전해지는 용기 있는 말들 속 한 글자 한 글자를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피해 경험을 접하며, 매번 마음 한쪽이 어두웠다고했다. ⓒ너머

 

이제 아픈 전시회는 당분간 그만하고 밝은 전시회를 하고 싶네요

이번 국가보안법 전시회 준비에 2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보통 전시가 3개월 정도 준비하고 진행한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이번 전시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권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국가보안법에 의해 피해받아 온 아픈 경험들을 함께 접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눈물이 나고 마음 한쪽이 항상 어두웠다고 이야기하면서 이제 당분간은 아픈 전시회보다는 밝은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활짝 웃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권 작가가 국가보안법 전시회 이후 선택한 작업은 산재로 인해 목숨을 잃으신 분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추모 조형물 제작과 설치였습니다. 권 작가는 활기찬 기운을 담아 본인의 예술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으면 그걸로 본인의 책임은 다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회적 문제에 끈을 놓치지 않고 계신 분들을 보면 항상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느낀 건, 국가보안법 폐지를 준비하면서 이 악법의 폐지는 물론이고 폐지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겠다라는 걸 느꼈어요. 국가보안법이 폐지됐을 때, 우리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응원하고 함께 하겠습니다.”

권은비 작가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은 국회에서 연장 전시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진보당 기관지 너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